- 김연수
- (金演洙)
- / 1907년 ~ 1974년
- 판소리 명창 김연수는 1907년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대홍리에서 태어낫으며 호는 동초東超이다. 그곳에서 14세까지 한학을 수학하였다. 1935년 순천에 체류 중인 유성준 문하에서 ‘수궁가’를 배운 것을 시작으로 다음 해까지 ‘흥부가’,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을 두루 섭렵하였다. 1937년 ‘조선 성악연구회’ 이사가 되었고, 동 기관 전속단체인 ‘조선창극좌’ 대표가 되면서 창극 중흥의 뜻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 같은 해 일본 ‘빅타’사의 전속가수가 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김연수는 1945년 ‘김연수창극단’ 1950년엔 ‘우리 국악단’을 만들어 ‘창극 판소리’라는 새로운 창법으로 판소리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새로운 음암성에 대한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연수는 밀려드는 서양 문명의 물결 속에 20세기 판소리에 연극을 접목한 ‘창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확산시키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196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로 지정 받았다.
판소리 명창'중요무형문화재'
동초 김연수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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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전남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644번지에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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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
1921년까지 9년간 한학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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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창악에 발의하여 이후 7년간 축음기로써 독습
(실제로는 녹동과 고흥에서 오성삼과 어울리며 지방소리꾼으로부터 소리를 배운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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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
순천군수 성정수 씨 댁에 머물던 유성준 선생을 찾아가 <수궁가>를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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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
7월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 입회하고, 송만갑 선생 문하에 입문하여 <흥부가> 및 <심청가>를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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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정정렬 선생 문하에 입문하여 1월에 충북 소재 현암사에서 <적벽가>를, 7월에 내금강 표훈사에서 <춘향가>를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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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4월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공연 <흥부전>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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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12월 13(일) 12:05 단가<천하태평>, <흥부전> 중 ‘흥부 쫓겨 나가는데’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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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조선성악연구회 이사 취임. 조선성악연구회 <창극단>에서 활동 시작.3월 일본 Victor 축음기회사 전속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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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Victor 레코드회사에서 <춘향전> 중 ‘이별 후의 꿈’, ‘일절통곡’, <수궁가> 중 ‘토끼 배 가르는 데’, ‘고고천변’, <적벽가> 중 ‘오림 자룡 출현’, ‘패군 모이는 데’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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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4월 22일 연속 판소리 <심청전>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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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9월 재일본동포위문단을 조직하고 이동백, 김창룡, 오태석, 한성준, 박록주 씨 외 6명과 일본 순회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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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조선창극좌>를 <조선창극단>으로 개칭 및 강화하고 계속하여 대표로 취임. 재만동포 위문하기 위해 만주 일대를 순회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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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Victor 레코드회사에서 <수궁가> 중 ‘가던 토끼 돌아보며’, ‘가자 어서가’, <춘향전> 중 ‘어사 춘향가 찾아’, ‘옥오경’, ‘오리정에 돌아와서’, ‘오리정 이별’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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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Victor 레코드회사에서 <춘향전> 중 ‘옥중오경’, ‘오리정 이별’ 재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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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6월 21일(금) 21:00 단가, <적벽가>, <춘향전> 중 ‘어사 출도하는 데’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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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6월 22일(토) 20:20 단가, <적벽가>, <춘향전> 중 ‘어사 출도하는 데’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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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Okeh 축음기회사와 전속 계약을 하고 <삼국지> 중 ‘패군 모여 우는 데’,‘오림에 자룡 출현’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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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Okeh 축음기회사에서 창극 <심청가> 16매 1질 및 판소리 <장끼타령> 4매 1질, <춘향전> 중에서 ‘오리정 이별’, 세월여류’, ‘이별 후의 꿈’과 창작곡 ‘아우를 생각고’ 발매. <김연수 애창집>으로 <춘향전> 4매 8면을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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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7월 26일(일) 21:00 단가 <강상가>, <심청가>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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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2월 <김연수창극단>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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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김연수창극단>에서 <장화홍련전> 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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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2월 장남 김규호 출생. (본래 장남 김성철이 있었으나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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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김연수창극단>에서 <단종과 사육신> 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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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우리국악단>을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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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우리국악단>에서 <평화의 쇠북소리>, <흑진주> 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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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장녀 김화신 출생(현재 미국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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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우리국악단>을 강숙자에게 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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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대한국악원장에 피선.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 문화위원 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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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국제극예술협회 ITI 한국본부 부위원장에 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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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대한국악원장에 재피선. 9월 전국공훈인사표창기념회의 국악 공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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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국립국극단장에 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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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재일동포 위문 일본 순회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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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1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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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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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지구레코드에서 <김연수걸작집> (LP 5매)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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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10월 전남 고흥군 군민의 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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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12월 제5회 공보부 국악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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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동아방송국에서 판소리5바탕 전판을 녹음 140회에 걸쳐 연속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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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6월 국악예술학교 출판부에서 <창본 춘향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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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지구레코드에서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LP 5매)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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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3월 9일 서울 신림동 자택에서 별세, 5일장 후 경기도 양주군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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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7월 28일 문화재관리국에서 < <창본 심청가 · 흥보가 · 수궁가 · 적벽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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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음력 윤4월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773-5 산 107-10번지로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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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4월 4일 “인간문화재 제5호 동초 김연수 선생 기념비” (현재 고흥종합문화회관 옆)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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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서울음반에서 <김연수 초기 녹음선집 빅터유성기음반 시리즈 3집>을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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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4월 김연수 흉상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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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신나라에서 <동초 김연수 창 판소리 다섯 바탕>을 CD 24매로 발매